김석진은 죽었다.

  죽은 사람이 멀쩡히 내 앞에 나타난다면, 그것을 어떤 누가 믿을 것인가. 나 민윤기는 믿는다. 평생을 신을 받아들여 보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신이라는 것을 믿어본다.






김석진 X 민윤기
우리의 두 번째 겨울에게



    [좋은 음악을 보여주신 것은 너무나 감사하나….]
  수십 개의 메일이 쌓인 메일통 중 가장 최근의 메일을 열어보고 다시 신경질 나게 창을 닫는다. 수십 통의 메일로 내 창작물을 보낸다는 것이 벌써 몇 번째던가. 감사하면 좀 받아주던가. 눈앞에 보이는 마우스를 화를 담아 탁- 하고 얕게 던져버렸다. 애꿎은 마우스 곳곳에 흠집이 난다. 삐걱 거리는 싸구려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대어 한참을 그 좁은 나의 작업실의 하얀 천장을 바라본다. 눈이 천장의 조명으로 아파질 때쯤, 오늘도 아무 가사 없는 그 음악을. K 폴더의 [track 00.]을 재생한다. 오늘도 그렇게 화를 추스르며 달달한 낮잠에 빠져든다.




  김석진의 사망은 윤기의 행복의 끝과 고통, 모든 고달픔의 시작이었다. 그토록 매달려왔던 음악은 이미 접은 지 꽤 오래였다. 사고로 인한 사망, 석진과 윤기의 사이에 작은 다툼으로 인해 석진이 뒤를 돌아가던 도중 윤기의 눈앞에서 일어난 것은 커다란 트럭이 석진을 밀어내고 급정거를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쓰러져 있는 석진의 모습이었다. 쓰러져 있는 석진에게 달려가 바닥에 내려져 있는 손을 꼭 잡고 구조대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윤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이었다. 윤기는 구급차로 실려 가는 석진을 보며 자신을 자책하기만 하였다. 윤기의 잘못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자신과 싸우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서 같이 있었다면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에 윤기는 자신을 탓했다. 석진을 뒤따라가 수술실 앞에서 이리저리 돌며, 석진이 끊게 도와줬던 손톱을 물어뜯던 행동은 다시 윤기는 딱, 딱 거리며 애꿎은 손톱이 없어져 맨살만 물어 뜯어버릴 정도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석진의 부모님 앞에 윤기는 무릎을 꿇으며 울음을 토해냈다. 제가 다 잘못했어요. 저 때문에 석진이 형이, 제가…. 저 때문에 자신들의 앞에서 울고 있는 윤기를 석진의 부모님들은 겨우겨우 다독여 네 탓이 아니라며 윤기를 진정시켰다. 큰 사고였기에 대 여섯 시간 정도의 수술이 끝나고 수술실의 문이 열리자 윤기는 다시 바닥에 털썩하고 주저앉으며 더는 나오지 않을 것만 같던 눈물이 흐르고 숨을 헐떡였다. 김석진이 사망했다.


  석진의 장례식장에 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다시 석진의 모습을 마주하면 자신이 죽어버릴 것만 같았기에 윤기는 자신의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중에서야 석진의 납골당을 찾아가서야 석진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낮은 자리에 있는 석진을 찾아 윤기는 다리를 굽혀 석진을 마주했다. 더 이상은 석진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들고온 작은 꽃을 석진을 가리지 않게 옆에 두고는 밖을 나왔다. 석진과의 추억들을 정리했다. 석진과의 추억이 묻은 물건들, 모든 것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가려 두었다. 그것이 윤기의 정신적 안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윤기는 대학을 그만두었다. 그 좋아하던 음악을 집어치웠다. 윤기는 조금씩, 갉아 없어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친한 동생 남준에 의해 반년 끝에 제정신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윤기였다. 아주 가끔, 아니 자주 석진이 생각났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윤기는 조금 빠듯한 돈으로 카메라를 장만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일명 아마추어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실력으로 이것저것을 찍었다. 윤기의 사진은 풍경만이 가득했다. 형은 왜 풍경만 찍어요? 남준의 질문에 차마 답할 수가 없었다. 아직은... 다른 걸 찍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형 밥 한 끼 할래요?]
  남준의 부름에 오랜만에 자신의 전 학교 앞으로 찾아간 윤기는 예전과 똑같은 길, 똑같은 모습에 나지막이 옛 추억들을 떠올려 본다. 같은 대학 시절을 함께한 석진과의 추억들을





*

  석진이 막 대학 시절을 한창 보내고 있을 때, 윤기는 19살이었다. 윤기는 어디 대학 가려고? 저 oo대... 거기 석진이 다니는 곳 아니야? 어 응. 아마도? 제 부모님한테는 괜히 둘러댔다. 사실은, 그 형 때문에 가는 건데.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던 윤기는 무작정 석진과 같은 대학을 위해 안 하던 공부까지 해가며 oo대에 합격했다. 워낙 공부도 잘하던 석진이라. 윤기가 가기에는 벅찼지만 사랑은... 그것조차 이겨낸다. 윤기가 새내기로 들어왔을 초봄에, 석진은 반갑게 윤기에게 인사를 건넨다.

"윤기?"

  석진이 자신을 불렀을 때, 교복이 아닌, 고등학생의 모습이 아닌 대학생으로서의 석진을 본 윤기는. 어색한 석진의 모습에 눈을 피했다.

"윤기 맞지?"
"아, 네. 오랜만이에요 형"
"진짜 오랜만이네. 부모님은 잘 계시고?"
"네."
"1년 동안 공부 열심히 했나 봐? 나한테 막 과외받고 그랬잖아. 너."
"아 그냥, 조금"
"이렇게 보니까 기쁘네, 말이 너무 길었지? 이제 자주 보자. 부모님도 언제 한 번 뵈러 가고."

  1년 만에 만난 석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윤기의 눈에는 그대로 친절하고 다정한 석진이 좋았다.






*

“아직도, 음악. 계속해?”


  학교 근처 작은 카페 안에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음악들을 정리하던 도중 자신의 맞은편에 머그잔을 두며 의자를 끌어 앉는 석진이 윤기에게 말을 걸었다.

“아, 그냥... 취미로.."

  으응 그렇구나. 예전에 고등학교 때 너 음악 하던 거 생각난다. 너희 부모님이 막 나보고 너한테 공부도 시켜보라고 음악에 완전 빠져가지고... 이런 얘기도 했었는데.  우리 부모님이요?  아, 비밀로 해달라 했는데 그래도 지금은 말해도 괜찮겠지? 그냥 너 걱정되셔서 하신 말씀이었어.  윤기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신 대답했다. 석진과 같이 있는 이 자리가 윤기는 긴장되고 어색함만 가득했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윤기의 모습을 석진은 뚫어져라. 보고만 있었다.

"형, 뭐 저한테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 미안해 그냥 너무 오랜만에 봐서 기뻐서 계속 쳐다보고 있었네. 많이 불편했지."
"아, 아니에요. 그냥 궁금하신 거 있나 해서."

  자리를 뜨려는 석진을 윤기가 잡았다. 석진은 웃으며 아 그래? 그러면 더 있어도 괜찮아? 학교 밖인데 신경 쓸 사람도 없고. 학교 안은 얘기하기 너무 불편한 거 같아서.  라며 윤기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윤기는 뭐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네?  아니 그냥... 평소에 많이 쳐다보길래 말할 거라도 있나 생각했어.  아...  윤기는 빠르게 귀를 붉힌다. 자신이 몰래 석진을 쳐다 본 것이 들킨 기분에 빨개진 얼굴과 귀를 보이기 부끄러웠다.

"없어?"
"아, 그게 아니고, 그, 형 애인 있으세요?"

  차마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아무 말이나 뱉어버린 윤기이다. 자신이 말하고도 한순간 멍해진 윤기는 더 붉어진 얼굴을 식히기 바빴다. 석진은 들고 있던 머그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웃었다. 그게 뭐야, 그게 궁금한 거야? 나는 아직은 없지.  아직은?요?  응, 좋아하는 사람은 있거든.  윤기는 조용해졌다. 좋아하는 사람 있구나 그렇지 형이면 뭐 인기도 많을 거니까... 석진은 윤기의 표정 변화를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자신이 말하자 금세 표정이 죽어서는 노트북만 바라보는 윤기가 귀여웠다. 귀여워.




*

“윤기야, 좋아해.”
  하얀 눈이 내렸던 크리스마스는 석진과의 첫 추억이 되었다. 석진과 윤기 주위에는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조명, 불빛들로 가득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입김 가득 나오는 춥디추운 날의 석진의 고백은 그 추위조차 녹여냈다. 아무 대답 없이 윤기는 석진을 보던 눈을 바닥으로 향했다. 다시 고개를 올려 석진을 바라보는 윤기의 눈이 반짝거렸다. 위, 아래로 두 번 살짝 고개를 끄덕인 윤기가 귀가 빨개진 채로 석진을 응시했다. 아무 말 없이 윤기의 손을 잡은 석진은 밥, 밥 먹으러 갈까?  떨리는 마음을 숨긴 채 수많은 사람들의 사이를 걸어간다.






*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보낸 음악 파일들과 지원 메일에 드디어 윤기에게 계약 제의가 들어왔다. 윤기는 다가오는 약속 시각에 옷매무새도 정리하지 못한 채 집 앞을 나섰다. 구겨 신은 신발을 발로만 애써 꾹꾹 신고 뛰어나가려던 찰나, 윤기는 우뚝하고는 멈춰 서버렸다. 제 앞에 서 있는 것은 석진이었다.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트렸다. 노트북이 들어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제 앞에 서 있는 석진에 눈조차 깜빡이는 법을 잊어버린 윤기다. 입이 벌어진 채로 떨리는 손을 들어 석진을 가리킨다.

"당신, 누"
"윤기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석진의 목소리가 맞았다. 2년 전 자신을 불러주던 그 목소리가 정말로 맞았다. 눈을 꼭 감았다가도 떠보고 눈을 비비기도 하고 내린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했다. 혹시나 해서 핸드폰 화면의 날짜를 확인했다. 2018년... 맞는데, 근데 왜 김석진이 왜.

"거짓말"
"응?"
"김석진 죽었잖아. 당신 누구야, 누군데 이딴 장난이나 치고 있어"
"나, 나 김석진 맞아 윤기야."

  윤기가 고개를 숙여 화와 눈물이 섞인 목소리로 작게 뱉어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네가 장난쳐서 속일 사람 아니라고, 왜 죽은 사람 기분 더럽게 김석진인척해요. 누군데 진짜.  내가 뭘 하면 믿어줄래? 내가 왜 김석진인척해. 내가 김석진인데.



*
*
*

"그러면 내 생일이나... 막 기념일도 다 기억해요?"
"응, 다 기억해"
"..."
"크리스마스 날, 내가 고백했잖아."

  윤기가 땡그래진 눈으로 석진을 쳐다본다. 다시 매서운 눈으로 석진의 눈을 응시한다. 그거 가지고 내가 과연 믿을 거라 생각하느냐는 둥. 그거밖에 모르느냐는 둥 눈빛으로. 석진은 그런 눈빛을 읽었다. 천천히, 윤기와의 2년 전 기억을 말해냈다. 윤기는 여전히 의심의 눈을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석진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근데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나타나요. 진짜 말 같은 소리도 하지마.  다시 가방을 들고 석진을 지나쳐 가려는 순간, 석진이 윤기를 붙잡았다.

"지금 당장은 믿을 수 없다는 거 아는데, 그래도 얘기할 시간 좀 주면 안 될까?"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표정에 윤기는 고민에 빠진다. 죽은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건 아는데, 정말로 알고 있는 모든 게 김석진 같아서, 윤기는 시간을 확인하고 이미 늦어버린 계약 시간에 담당자분에게 문자를 드리고 석진에게 다가가 석진을 올려다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면, 다 얘기 해봐요. 지금."



  윤기는 석진을 시험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대학 시절 그 카페를 찾아갔다. 집 앞에 서서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카페라도 가요. 앞장서서 걷는 윤기를 뒤따라가는 석진. 카페에 들어서서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윤기는 석진을 바라보았다. 석진은 바로 말을 꺼냈다.
"너 여기서 작업하고 있을 때, 나랑 처음으로 옛날 얘기할 때 있었던 카페."

  되려 당황한 윤기이다. 이미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석진은 작은 미소를 지어냈다. 그때 했던 얘기도 꺼내볼까? 네가 나보고 애인도 있냐...  그만, 그만! 그건 얘기하지 마요 알겠으니까.  어지간히 부끄러웠던 과거였는지 급하게 석진의 입을 막아섰다. 석진은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갔다. 아 그리고... 너랑 처음으로 했던 날도 기억하는데,  제발, 카페니까 조용히 좀 해요 제발...


  이 정도면 믿어줄 거야? 윤기는 잠시 고민하는듯하더니 말을 한다. 지금 당장 우리 형이 돌아왔구나! 하고는 못 믿겠지만... 이 정도면 믿어야 하지 않을까... 요? 일단, 일단은 믿을게요. 더 있어 보면 형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 같으니까…. 뭐 몇 년 더 있다 보면 확실해지겠죠? 그래도 지금 선에서는 형이 돌아왔다 하고 생각할게요. 거짓이라고 해도 잠깐이나마 추억도 회상하고 기뻤으니까...



"... 계속은 있지 못할 거야."

  윤기가 고개를 들어 석진을 바라본다. 네? 정말로. 사뭇 진지한 표정의 석진이 윤기마저 진지하게 만들었다. 나도 언제 떠날지는 몰라 그냥, 알고 있으라고. 네가 정말로 나를 믿어줄지 안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알고 있는 게 더 안 슬프잖아. 그지? 자기가 분위기는 온갖 슬프게 해놓고 또 해맑게 웃는 건 뭐야 진짜. 다시 헤어짐이 찾아온다는 겨울에 윤기는 애써 슬픔을 감춘다. 아, 배고프다. 우리 그럼 옛날에 갔던 음식점이나 가요.




*

  윤기는 석진이 없던 그동안 삶에 대해 얘기했다. 석진은 윤기에 말에 경청하며, 같이 공감도 하고 또다시 자책했던 자신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윤기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면 음악은 아예 접은 거야?  사실 형... 죽고 나서 접고 사진 찍고 다녔거든요, 근데 최근 들어서 또다시 음악 하고 싶어서 지원 넣었는데 우연히 연락 와서 담당자 만나려고 가는 날, 그날에 다시 처음으로 형 만나고... 그러면 나 때문에 다시 못한 거 아니야?  으응 아니, 다시 문자로 연락 넣어서 다른 날로 날 잡았어요.  아아 다행이다. 그럼 사진은 취미로 하고?  거의 그런 셈이죠.  나도 사진 보고 싶어 윤기가 찍은 거. 보여주면 안 돼?

  윤기의 카메라를 몇 번 만지작하더니 윤기가 찍은 사진들을 집중해서 보는 석진, 제 애인에게 보여주는 기분이라서 그런지 윤기는 침을 몇 번이나 삼킨 지도 모르겠다.  잘 찍는다. 근데 풍경밖에 없네?  아, 아직은 풍경만 찍고싶었어서...  응?  사실은 인물사진은 꼭 형이랑 찍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까 형이 제 옆에 없었잖아요. 그래서 그냥... 다른 사람으로 먼저 채우기는 싫어서.  그러면 지금 찍자.  네? 지금?  응. 지금

  자신의 집에서 가장 깔끔한 벽 찾겠다고 이리저리 옮기다가 겨우 찾아 삼각대도 가져와서 타이머까지 맞추고 띡- 하고 누르자마자 석진의 옆에 달려갔다. 어색하게 카메라의 렌즈를 쳐다보았다. 형 웃어요.  형 이미 웃고 있는데, 너나 웃어라. 어색하게.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진을 확인해보고는 풋 하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왜? 뭔데?  형이랑 나랑 너무 어색하게 찍혀서. 봐봐요. 진짜 어색하게 웃고있어.  석진도 사진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웃기네. 웃는 거도 똑같아. 이거 인쇄해서 서로 가지자. 아 진짜 웃겨...

  석진과의 새로운 추억들을 쌓는 건 순식간이었다. 벌써 석진과 윤기가 다시 배회한 지 2주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크리스마스가 찾아오고 있었다. 2주라는 시간 동안 서로 집에서 온종일 뒹굴기도 하고, 예전에 자주 갔던 가게들, 장소들도 다니며 추억 회상을 하기도 했고, 또 학교도 다시 들어가 CC의 느낌을 내보기도 했다. 하루는 윤기의 작업실에서 윤기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석진이었다. 무언가가 잘 풀리지 않는지 머리를 쥐며 계속 수정하고를 반복하는 윤기를 석진이 다가와 윤기의 어깨를 한 손으로 주물러주었다. 잘 안 돼?  조금, 이럴 때도 있는 거고 하잖아요. 계속해봐야지.  멋있어 완전 민윤기...  뭐가 멋있어 진짜 덕분에 조금 풀린 듯 얼굴에 미소를 짓는 윤기. 석진이 모니터를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음악 아직도 있어?  응? 뭐요?  그, 나랑 만났을 때부터 작업했던 거. 나한테도 들려줬었고 내가 아마도 가사 써온다고 막 했다가 네가 이게 뭐냐고 막 투덜거렸잖아.  아... 그거.  있어?  으응 당연하죠.
[Track 00.] 을 재생시키는 윤기의 손이 오늘만큼은 긴장이 섞였다. 두 번째로 같이 듣는 이 음악은 그 어떠한 상황보다 떨려왔다. 길었던 짧은 노래가 끝나고 석진이 말했다. 좋다. 옛날에 들었던 그때도 기억나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 말하는 석진의 표정을 본 윤기가 덩달아 자신도 생각에 잠겨버렸다.


  오랜만에 윤기가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에 둘은 영화관으로 가던 도중이었다.
형. 저기 태형이다.  어?  야 김태형! 석진과 윤기가 걷고 있던 도중, 그 둘의 반대편에서 후배 태형이 걸어온다. 오랜만에 배회한 태형이 반가운지 태형을 부르는 윤기. 형도 오랜만이잖아. 그지? 석진을 바라보며 말하는 윤기. 고개를 돌려 석진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없는 자신의 옆에 주위를 둘러본다. 그 사이에 윤기 앞에 서 있는 태형이 먼저 윤기에게 말을 건넨다.

"형?"
"어, 태형아."
"사람 불러놓고 왜 대답이 없어요."
"아니, 여기에 석진이 형이 있었는데..."
"네?"
"아, 잠시만 형한테 전화 왔다."
"형, 지금 무,"
"야 태형아 미안해. 반가워서 인사라도 하려고 부른 건데 형이 급하다고 해서 먼저 갈게!"
"형!"

  태형은 윤기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분명 혼자 걸어오던 윤기가 죽은 석진을 찾으며 뒤돌아가는 모습을 태형은 넋이 나간 듯 저 멀리 달려가는 윤기를 잡지 못했다.
형 갑자기 어디간거야.  아 잠깐 잊어버린게 있어서 미안해. 아니 나는 괜찮은데 난 또, 무슨 일 생긴줄알고... 태형이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아쉽다.  으응, 너무 아쉽다.  다음에 또 보면 되니까. 늦겠다 빨리 가요.


  영화가 끝나고 석진과 윤기는 서로의 집으로 헤어졌다. 영화관에서는 석진의 집이 더 가깝기에 석진을 먼저 데려다주고 윤기가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웅웅- 하고 울리는 휴대폰을 들어보니 태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 태형아]
[형? 어디에요?]
[아, 나 석진이 형이랑 영화 보고 집 가는 길. 맞다 아까 석진이 형이 무슨 일이 생겨서 너 보려다가 못 봐서 아쉬워하더라. 나중에 한 번 보자]
[형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석진이형? 아까부터 자꾸...]
[아... 이게 설명하기는 길어서, 나중에 시간 되면 알려줄게]
[형 지금 이상한 거 알아요? 죽은 사람이랑 같이 있었다고 하질 않나...]
[그게 말하기가 좀... 길어. 석진이형 다시 돌아왔는데... 이게 복잡하다.]
[형 진짜 무슨말이에요... 아까도 혼자 걸어와 놓고 석진이형 찾지 않나... 형 진짜 괜찮은 거 맞죠?]
[뭐? 너 다시 말해봐.]
[네? 아니 형 괜찮은 거 맞냐고...]
[그거 말고 그 전에, 나 혼자 걸어오고 있었다고?]
[네... 그게,]
[잠시만, 끊어봐]

  급하게 태형과의 전화를 끊었다. 나 혼자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 윤기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오늘따라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음을 느낀다. 윤기는 석진에게 전화를 건다.

[윤기야]
[어, 형 나 지금 집 거의 도착했는데, 아까...]
[미안해 정말 정말로]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기분이 싸 했다. 설마, 아니야. 아닐 거야. 끊어진 전화 창을 볼 시간도 없이 윤기는 뛰었다. 윤기가 빠르게 달려간 곳은 석진의 집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텅 비어있는 공터가 있을 뿐. 형, 형 집... 집 어디 있어. 자신이 잘못 찾아온 거라 생각한 윤기는 같은 동네를 몇 번이고, 계속이고 돌았다. 윤기는 다시 뛰어 학교, 같이 가던 공원, 영화관, 또 자신의 집. 그리고 작업실까지 석진을 찾아 나선다. 새어 나오려는 눈물을 뛰어다니며 바람으로 말려만 간다.

  석진에게 연락을 걸기 위해 폰을 들어 연락처를 찾는 윤기는 표정이 굳어간다. 김석진 어디 있어... 김석진.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의 연락처 `ㄱ`에는 김석진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키패드를 켜 석진의 번호를 꾹꾹 눌러 전화를 건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 전화를 뚝 하고 끊는다. 다시 통화 기록을 들어가 석진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 뚝 하고 끊기는 음성이 지금의 윤기의 상황을 대신했다.


  석진을 찾아다닌 지 벌써 3시간이 넘게 흐르고 있었다. 윤기는 석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흔적조차도 사라진 채 오래였다. 석진을 찾기 위해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그 시간 동안 석진을 본 것은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 윤기 혼자였기에, 홀로 자신의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김석진은 사라졌다. 윤기는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평생 계속 같이 있을 수 없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윤기는 더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윤기는 무언가 퍼뜩 생각이 난 듯 미리 찾아두었던 사진을 본다. 같이 있어야 할 석진이 윤기의 곁에 없다. 사진 속에는 윤기 혼자만이 어색한 듯 웃고 있었다. 사진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사진관을 찾아 뛰었다. 마감 시간이 되어 가게를 정리하고 있던 주인장에게 정리가 안 된 말들을 뱉어내는 윤기. 이거 사진, 잘못 인쇄 된 거 같아요, 이게 왜, 왜 사람이 없어요. 툭 하고 건드리면 쓰러질 것만 같은 윤기를 주인장이 겨우 진정시키고 윤기의 말을 들었다. 정리하던 행동을 멈추고 컴퓨터를 켜 윤기에게 사진을 확인시켜주었다. 어디가 잘못 인쇄 된건지... 지금은 너무 늦어서 확인할 수가 없는데 다시 확인해보고 내일 와줄래요? 이제 나도 집 가야 해서  윤기는 모니터에 보이는 사진을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모니터의 사진은 자신이 들고 있는 인화 사진과 같이 윤기 혼자만이 앉아있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뭔가 오해를 하고 온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윤기는 빠르게 사진관을 뛰어나왔다.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일까. 남들 말처럼 정말로 무언가 이상한 걸까. 너무 보고 싶어서 환각을 본 건가? 윤기는 작업실로 향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석진과의 자신의 기억이 정말로 환상이었는지에 대해 생각을 했다. 정말로 사람이 정신이 나간 것처럼 윤기는 앞을 응시하고 걸어가면서도 이리저리 부딪히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도 멍한 얼굴과 정신으로 작업실에 다다랐다. 오랜만에 찾아온 작업실은 아무런 사람의 향기도 나지 않았다. 이미 곳곳에는 먼지들로만 가득했다.

  자신의 작업실에 들어온 윤기는 먼지가 쌓인 자신의 책상 위에서 쪽지를 발견한다. 그 쪽지를 들어 읽던 윤기의 손이 떨리며 눈에서는 눈물들이 흐르다 못해 쏟아져나온다. 자신이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석진의 마지막 추억이 담겼던 그 노트의 한자락. 석진이 직접 손수 적어줬었던. 윤기는 덜덜 떨려서 계속 미끌하는 자신의 손을 쥐꼬리만큼 남은 정신을 붙잡고 마우스를 잡는다.


  [track 00.]을 재생시킨다. 떨리는 손과 눈망울로. 첫 시작의 전주가 어서 지나가길 기도한다. 윤기의 귀 사이로 들어간 음성은 석진의 목소리였다. 석진의 사망 전, 자신에게 어설픈 솜씨로 써온 그 가사, 석진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마침내 윤기는 눈물을 쏟아낸다.

"진짜잖아, 진짜로 김석진 맞잖아..."


  석진과 대학 시절 처음 같이 있었던 그 카페에서부터 써가던 그 곡, 석진에게도 들려주며 석진에 반응에 기뻐하고 부끄러워하던 그 반주만 존재했던 곡에 석진의 목소리가 입혀져 하나의 노래가 윤기의 귀를 통과했다. 곧 이어 소리내 우는 윤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꺽꺽거리며 눈물을 쏟아낸다. 모두가 자신을 보며 미쳤다면서, 죽은 사람도 보는 이상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을 해댈 때, 자신조차 도 자신이 환상을 본 것이라며 생각할 때. 석진의 목소리가 이 모든 사실을 해명했다. 정말로 윤기에게 나타난 사람은 김석진이 맞았다. 더는 헛것도 아니고 정말로 인간 대 인간으로 석진이 윤기를 찾아왔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던 석진을 윤기 혼자만이 믿고 혼자만이 추억한다. 석진이 마지막으로 두고 간 선물이자 자신에게 해주는 마지막 말이라는 그 곡을, 윤기는 울음과 함께 웃는다.

윤기는 신이란 것을 믿어본다.
김석진이라는 자신의 사람, 자신의 생을